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칼 바랏 (문단 편집) == 피트 도허티와의 만남과 리버틴즈 == >"'''날 칭찬해주는 놈들, 충고해주는 놈들, 욕하는 놈들. 다 똑같다. 말만 그러지 다 나 X되면 비웃느라 바쁜 거 누가 모를까봐. 사람들이 뭐라 지껄이건 관심 없다. 나한텐 카를로스밖에 없다. [[칼 바랏|칼]]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가 웃는 모습을 자주 보고 싶다. 근데 난 그를 자꾸 울게 만들었다. 상처주느니 포기하기로, 모든 걸 그만두기로 했다.'''" >'''[[피트 도허티]]''' ||<#ffffff>[[파일:1omenkB.jpg]]|| 메인 항목: [[리버틴즈]], [[Up the Bracket]], [[NME]] 97년 리버틴즈를 결성, 2000~2001년부터 슬슬 인디계에서 인지도를 얻어가며, 마침내 2002년 6월 리버틴즈 첫 싱글 "What A Waster"의 경쾌한 UK 싱글차트 #37를 기록, 같은 해 10월 데뷔앨범 [[Up the Bracket]]이 UK 앨범차트 #35를 비롯해서 3~4개의 차트에 좋은 성적으로 진입한다.등장 당시 우리 세대 비틀즈부터 차세대 오아시스나 섹스 피스톨즈와 MSP의 재림이라는 등 참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당시 영국 록계 몰락의 위기의식을 느낀 여론의 과한 기대 여론이 많이 적용하였을 뿐, 십년도 넘게 지난 지금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리버틴즈는 스트록스에 대항한 '''런던의 자존심'''이 되어주었다. 스트록스의 데뷔 앨범과 함께 런던 개러지 락의 교과서로 등극한 리버틴즈의 데뷔 앨범은 이후 우후죽순 솟아날 온갖 런던 포스트 펑크 인디 카피밴드들의 시초가 된다. 그러나 고질적으로 안고 살던 마약 문제가 본격적으로 심해지기 시작하고 칼과의 불화가 극에 달해 2004년 영국 차트 #1에 가뿐하게 진입한 리버틴즈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앨범을 내고 밴드에서 쫓겨난다. 얼마 안 가 리버틴즈도 자연스레 해체된다. 그 당시 리버틴즈는 이미 런던 내에서 스트록스보다도 핫했던 밴드였음을 감안하면 여러모로 안타깝지만, 실질적으로 밴드 유지 자체가 불가능했으며 NME와 밴드의 지인들이 말하길 "(밴드 내부적으로 망가진 정도가) 섹스 피스톨즈 때를 보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사실상 '''어쩔 수 없이''' 피눈물을 참고 피트를 쫓아내고 혼자 남은 칼 바랏은 2004년말까지 '''계약 때문에 반드시 치러내야 했던''' 공연 및 프로모[* 하필이면 리버틴즈 두번째 앨범은 차트 넘버 원을 올킬하는 등 초대박을 쳐서 스케줄이 쉴새없이 잡혔다. 그런 타이밍에 피트는..]를 피트 없이 치러내며 어찌 보면 피트보다 더한 고생을 하게 된다. 이후 리버틴즈 드러머 게리 파웰을 동반한 후 2005년 자신만의 단독 밴드 더티 프리팅 씽을 결성, 다음 해 데뷔 앨범을 발매, 무려 '''앨범 차트 #3'''에 올라 [[베이비솀블즈]]의 데뷔 앨범 'Down In Albion'의 차트 성적 #10을 상업적으로도 평론적으로 처바르는 위엄을 보여주었으나, 2008년 DPT 두번째 앨범의 부진으로 인해 동년 연말에 해체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